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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면서 취미를 갖는 다는 것은, 뭐랄까.
나의 시간이라고는 잠자는 시간 밖에 없는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내게는 취미란, 추상적인 단어이면서도 늘 품고 있던 계획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취미라는 단어를 써먹겠다며, 진로의 방향을 틀고 요 근래 이것 저것 해보고 있는데 네일 아트는 공들인 시간에 비해 재미가 없었다. 긴 시간을 소비해가며 손톱에 정성을 들여도 조심성이 없는 내 산만함 덕분에 손톱을 바르는 시간보다 지우는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취미를 찾은 게 기타와 그림인데, 오늘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조세현 <의사가 그리고 쓴 치유의 미술>과 함께.
28년이나 한 직장에서 일한 주변머리가 없는 정형외과 의사 조세현은 나를 믿고 자신을 맡겨 준 환자이기에 감사할 뿐이며, 이 수술법을 가르쳐 주신 나의 은사님들께도 감사 드린다(_196) 라고 말하는 겸손하고 우직한 화백이다. 그의 책 <의사가 그리고 쓴 치유의 미술 : 전공을 취미처럼, 취미를 전공처럼>은 2004-2013년까지(책 속에 적힌 년도에 의해 적은 거라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의 그림과 글들이 담겨진 책이다. 에세이 특성상, 얻고자 함이 아니라 읽고자 함을 먼저 생각하고 책을핀다면 자연스레 얻는 것들이 생길 것이다. 그 얻는 것들이 어떤가 하고 가령 글을 가져오자면.
나를 만나러 종일 말을 타고 온 78세의 할아버지도 있었다. 내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부인의 건강 상담을 위해서 8시간 말을 타고 왔다고 한다. 할머니가 잘 걷지 못하는데, 한 달 전에 한국인 의사가 인공관절 수술하러 온다는 소문을 듣고 왔단다. 내 평생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8시간 고속버스라도 타본 적이 있는가, 내가 가진 주식이 무엇이고, 얼마나 오르면 뭐하나 라고 자문해 보았다. 내가 몽골 할아버지보다 못한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가를 반성해 본다. (_205)
내일을 두려워 말고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세요.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히지만 벽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를 시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_41)
그림과 이어져 있는, 일기 같은 그의 글들은 무겁지 않다. 심지어 위트까지 더해졌다. 그림 옆에 짤막한 글들은 계속 미소 짓게 했다. 만약 그가 화가였다면 나는 이 책을 들지 않았을 거다. 전공을 취미처럼, 취미를 전공처럼 이라는 부제가 나의 시선을 잡았다. 요즘 나도 신세계 아카데미에서 인물화를 배우고 있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인데도 막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잘 그리고 싶은 것은 당연하고 빨리 익히고 싶은 거다. 그런데 시간을 보내면서, 취미들을 구체적으로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어떤 활동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천천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림은 단연코 천천히 다. 알면서도 조세현 작가의 길게 그려온 그림에 쏟아 낸시간들이 부럽고 그의 실력이 탐이 난다. 일과 취미의 오래 된 병행, 그를 닮아갈 수 있을까.
그저 빨리 그려서 완성하려는 마음에 수업 시간만 되면 붓길이 급하다. 그래서 선생님으로부터 항상 지적을 받는다. "자네는 오늘 완성해서 내일 개인전을 하려나 보네." 선생님은 또한 그림은 대상(모델)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똑같이 그리려고만 한다면 사진이 정확하고 빠르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고 시간 걸리는 고생을 할까. 그것은 화가가 모델을 보고 얻는 느낌을 그리는 것이기에, 좀 더 천천히 관찰하고 느끼면서 그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_32)
그의 책을 읽는데, 문득 감사해진다. 서평 특강에서 김민영 강사님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제일 값싼 게 책값이지 않느냐고. 심지어 빌려 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나는 조세현의 <치유의 미술>을 다 읽고 내려 놓으면서 김민영 강사의 말에 백 번 동의했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으로 나는 그림도 글도 모두 볼 수 있으니, 작가에게도 도서관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앞으로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자네는 집을 지을 때 기둥을 먼저 세우나, 예쁜 도배지를 먼저 고르나?" 라는 질문이다. 사실 이것으로 이미 꾸지람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전체적인 데생이 잘못된 상태에서 모델의 예쁜 어깨의 분홍빛 살색을 내려고 애를 쓰고 있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역시 숲을 보고 나서 나무를 보아라. 나무도 큰 기둥을 먼저 보고, 작은 가지는 나중에 그리라고 하신다. 나 같은 초보자는 30년 이상을 그렸는데도 여전히 초보자다. 머리부터 다리까지의 굵고 큰 부분의 비례가 맞지 않는 상태에서 손가락 마디 하나를 예쁘게 그리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_33)
의사이자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한 그의 그림과 말들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의 두 가지 이력만큼 글과 그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인의 고뇌와 일상이 정직하게 드러나 있으면서도 지하철에서 카페와 버스 안에서 심지어는 비행기와 일본의 사세보, 태국의 치앙마이, 로마 공항과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와 중국의 상해 거리까지 세계 곳곳에서 건져 올린 그림들도 그득하다.
그의 글은 세상을 좀 더 산 스승이 들려주는 말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어렵지 않다. 수술실의 긴장을 풀기 위해 새로운 유머를 개발해가는 그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노련하면서도 웃음이 끼어들어 친근하다. 풍경화는 풍경화대로 색채가 따뜻하고 섬세하며 크로키와 스케치는 인물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림만으로도 직업인인 그가 어떻게 환자를 대하고 수술을 집도하는지 알 수 있으며 인간적인 풍모와 실력을 위한 성실함이 전해질 정도다. 또 진료실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그의 간결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읽어내는 앞세대의 진지함과 선의가 가슴으로 느껴진다.
들어가는 말
그림 치유의 풍경이 되다
미술과 요리와 수술
여름날의 야외 스케치
멀리서 보는 메밀밭
낡은 붓이 더 좋다
누드화의 교훈
노인들은 일찍 일으켜야 폐렴이 예방된다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
보라카이에서 얻은 회복
치앙마이의 마사지 걸
비행기에서 열리는 즉석 콘서트
붓을 든 의사의 이야기
서머타임과 아침형 인간
카페오레 한 잔, 타르틴 한 쪽
일요일 아침의 모닝커피
어떤 셔츠를 입을까
다실 궁궐
당뇨와 팥빙수
스시 장인
시의 영혼, 그림의 영혼
현미밥과 그리운 아버지
골프와 등산
무료 행복 충전소
내가 생각하는 종교
외래 대기실의 노인들
유럽 밖의 교황님
여류 화가의 아이들 그림
데셍의 중요성
전공을 취미처럼, 취미를 전공처럼
관광 가이드의 속사정
환자를 그리는 역사
정형외과 음악회
나는 세계의 길거리 화가
사세보의 안개섬
쿠로가와 온천에서 본 여성의 힘
치마 입고 달리는 일본 여성들
일본의 풍경과 사람들
가우디 성당에서 배운 느림의 즐거움
베로나의 줄리엣 동상
구석구석 베로나 스케치
길거리 화가의 그림엽서
음악에 키스하는 거리의 악사들
잠자는 개의 2유로
소피아 거리의 서점 주인
여행자의 불가리아
로마 공항은 또 하나의 화실
유럽에서의 크로키
캘리포니아의 나무들
쿠알라룸푸르 스케치
아델라이드의 스시바
패션쇼와 시위대
상하이의 거리 화랑
매일이 풍경이고 그림입니다
주말의 삼청동
창밖의 인사동
의형제를 맺은 도화 풍경
미용실에서 훔쳐보기
공항남녀의 이별 장면
하늘 위의 모델들
한여름의 스키장
햄버가와 장병들
화실의 스승과 모델
대관령 음악제 스케치
커피 배달 아가씨를 아시나요
지루하지 않게 고속버스 타는 방법
달리는 지하철에서 크로키
도시, 카페 크로키
여행자의 공항 스케치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
아들이 커간다
자동차 시승식
28년 정형외과 교수의 희망일기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인공관절 수술을 했는데, 가능한 한 걷지 말고 아끼라고요?
비만 자동차
정형외괴 의사의 오지랖
나는 소방수다
수술은 단 한번의 기회밖에 없다
몽골과의 인연
비행기에서 만난 환자들
의사의 실력 혹은 인격
눈병이 났다
해부 실습실에서
정형외과 환자 3년이면 전공의 3년차가 된다
자존심인가? 인격인가?
환자의 아리송한 시간 표현
외래환자 스무 명당 한명의 천사가 온다
의사 앞에만 오면 아들은 효자가 된다
어려운 친구와 편한 친구
이승엽 선수의 홈런
나는 좋은 직업을 갖고 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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